[발언문]학습지 노동자 직장내괴롭힘 실태와 근로기준법 개정 필요성

학습지 노동자 직장내괴롭힘 실태와 근로기준법 개정 필요성

 

민주노총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성 인정 근로기준법 개정 촉구 현장 증언대회

서비스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여민희 사무처장 


“빵(0) 탈출”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닫힌 방에서 단서를 찾아 탈출하는 흔히 알고 있는 유희적 게임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적이 '0'인 학습지 교사들을 모아놓고, 실적을 올릴 때까지 나갈 수 없게 가두는 '벌칙성 카톡방'의 이름입니다. 최근에는 더 기괴하게 진화했습니다. 독립 만세의 정신을 모독하듯, 실적 3개를 채워야 나갈 수 있다는 의미의 "3.1 방"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관리자의 우위를 이용한 이 비인격적인 감옥 안에서, 교사들은 따로 소집되어 벌칙성 교육을 받고 인격적 모독을 견뎌내야 합니다. 

학습지 현장에서는 이런 일들이 생소하지 않습니다. 작년 2025년 학습지 노조에서 실시한 '부정영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2%가 최근 1년 내에 ‘가짜 회원’을 등록하거나 퇴회 처리를 미루는(퇴회 홀딩) 부정영업을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만약 교사가 이를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요? 응답자의 70.6%가 재계약 불이익, 과목 및 지역 배정 축소, 심지어 왕따와 심리적 압박 등 명백한 불이익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답했습니다. 관리자의 요구에 저항하며 부정영업을 거부한 교사를 왕따시키기 위해 카톡방을 새로 만들고 그 교사를 제외시키는 경우는 이미 허다합니다. 

99ff25751333d.jpg

d84d3375390f7.jpg

실적 압박과 재계약에 대한 공포 때문에 학습지 노동자들은 자신의 임금을 털어 가짜 회원의 회비를 대납하는 억울한 구조 속에서 그 스트레스 지수는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관리 중인 회원을 회수하겠다”는 협박, 남들 다 하는데 유별나다며 인정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모욕적인 언사, 신규 회원을 주지 않는 차별, 실적과 회원을 다른 교사에게 몰래 빼돌리는 행위, 재계약 거부 등 명백히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선' 직장내 괴롭힘 행위가 학습지 현장에서 만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 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의 보호망은 학습지 노동자들에게는 미치지 않습니다. 법은 “당신은 근로자인가”를 먼저 묻습니다. 법이 요구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노동부가 가장 먼저 근로기준법상 조치 의무가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근로자가 아니니 괴롭힘을 당해도 된다는 것입니까? 

동일한 괴롭힘 행위에 대해 고용 형태에 따라 보호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 정당한 것입니까? 

최근 사법부는 이에 대해 중요한 판단을 제시하였습니다. 

2024년 5월 17일, 대법원 선고(2024다207558)는 직장 내 괴롭힘 법리의 적용에 있어 "근로자 여부가 본질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대법원은 상급자로부터 폭언과 외모 비하를 당하다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골프장 캐디 사건에서, 가해자의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묻고 사업주 역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사람이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가 계약의 형태 뒤에 숨어서 정당화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판결을 받기까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유족이 기나긴 민사 소송을 거쳐야만 겨우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받는 현실은 너무도 가혹합니다. 이는 근로기준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의 기준 역시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 제190호 협약은 폭력과 괴롭힘의 보호 대상을 근로계약 여부와 관계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고용 형태가 아니라 노동을 제공하는 모든 사람의 존엄과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적 기준입니다.

 하지만 우리 근로기준법만은 1953년에 멈춰 있습니다. 70년이 흐른 지금, 산업 구조가 급변하고 고용 형태가 다양화된 노동환경에서 870만의 특수고용·플랫폼, 프리랜서 등 비임금 노동자들은 법의 공백이 아닌 '정의의 공백' 속에서 여전히 신음하고 있습니다. 

2018년 6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노조법 2조1호의 노동자 정의가 바뀌지 않아서 같은 업종, 같은 업무를 하는 대교의 학습지 노동자들은 2021년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리고 2022년에야 첫 단체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 구몬의 학습지 노동자들도 긴 소송의 시간을 견디며 2025년이 되 어서야 첫 단체교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년을 넘게 투쟁하며 버텨서 얻은 대법원의 판결을 받더라도, 법이 바뀌지 않으면 또다른 누군가들은 수십 년을 투쟁하고 소송 결과를 기다리며 버티고 버텨야 합니다. 

어렵게 시작한 단체교섭에서도 회사는 학습지교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단체협약에 ‘직장 내 괴롭힘’이나 ‘고객의 폭력으로부터 보호’ 등의 조항을 담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법이 허용할 때 그때 다시 협상하자고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의 본질은 '어떤 계약을 맺었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일터에서 개인의 인격권과 건강권을 지켜주는 데 있습니다. 사용자의 실질적인 지휘와 압박 속에서 고통받는 학습지 노동자들, 그리고 수많은 특수고용·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일터의 유령이 아닙니다. 각자의 일터에서 함께 땀 흘리는 똑같은 노동자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원칙은 일터에서 그 어떤 예외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국회와 사회가 나서야 합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여 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합니다. 구조적 이유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자를 위해,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국가의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당신은 근로자인가?”가 아니라, “당신의 노동은 안전한가?”를 물어야 합니다. 

학습지 노동자 그리고 수많은 특수고용·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 모든 일하는 사람이 괴롭힘 없는 일터에서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는 사람 모두 근로기준법으로 차별받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우리는 함께 힘을 모으고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f59c9f56585d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