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근대 문화도시 '군산'

소식지 편집위
2022-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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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근대 문화도시 '군산'

 

글 장정원 조합원 ❙ 구몬 기흥지국


근대문화도시 ‘군산’ 역사기행을 가다.

46년을 살아오면서 나에게 역사란 교과서를 통해 배운 단편적인 지식들 일 뿐이었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흔적이자 나와는 거리가 멀며 큰 역사적 사실 이외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군산 또한 항구도시라는 것 외에 군산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없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군산

1876년에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은 부산, 원산, 인천을 개항시켰고 1899년에 목포, 진남포와 함께 군산(당시 옥구)을 추가 개항시켰다. 그리하여 군산항 근처 갈대밭 자리에 일본인이 중심이 된 새로운 시가지를 조성하였다. 군산이 서해안 중부권의 항구도시로 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 옥구평야와 김제평야의 곡창지대에서 나는 쌀을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한 통로가 되면서 부터이다. 군산은 현재 한국에서 근대 일본식 건축물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이며 일제 강점기의 수탈의 중심 도시로서 아픔이 많은 곳이다.


옥구 농민 항쟁과 나의 삶

1927년 전라북도 옥구 일본인 이엽사 농장에서 있었던 일... 옥구 농민들은 일본인 지주들에게 75%라는 고율의 소작료를 부과 받고, 중간 관리인 마름의 횡포에 이중고를 겪었다.

2022년 대한민국 구몬학습 현장에서 일아나고 있는 일... 구몬 중간 관리인 지국장, 지구장에게 도전교사라는 명목하에 아침 8시반  무진 활동  및 교사와 협의 없이 일방적인 신상품 도전 교사방 개설하여 관리를 받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95년 전 옥구 소작농의 삶과 현재 학습지 교사의 삶이 이렇게도 닮았을까? 이렇게 95년전 생존권을 위협 받은 소작농들은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일제 지배의 틀부터 무너뜨려야 한다고 인식해 소작 쟁의 활동(옥구 농민 항쟁)을 일제 강점기에 진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라는 문구가 내 눈과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이제야 나는 군산 역사 기행을 통해서 왜 역사를 잊지 않아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몬 국어 K단계 191a에 실려있는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일부를 옮겨 적으며 정리해 본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며 , 그것을 위한 수단은 투쟁이다. 법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한 - 그리고 세계가 존속하는 한 이 상태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법은 이러한 투쟁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즉 민족과 국가권력, 그리고 계급과 개인의 투쟁이다. 

이 세상의 모든 권리는 투쟁을 통해 쟁취 된 것이며, 모든 법규는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맞서 투쟁함으로써 쟁취 된 것이다. 또한 한 민족의 권리든 개인의 권리든 모든 권리는 그 주장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무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무게로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법이 정해 놓은 테두리 안에서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에게 "법은 투쟁이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법을 평화와 질서의 상태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권리를 위한 투쟁을 시작할 것이다 투쟁에는 고통이 따를 것이지만 우리 함께 동지의 손을 꼭 잡고 연대하여 새로운 길을 열어 갑시다.


내 고장의 역사를 찾아보자.

나는 이번 역사기행을 통해 내 고장의 역사부터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 다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화성시 역사’를 검색해 보니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관’ 이 나왔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자신의 도시의 역사를 바로 지금 검색해보시고 찾아가 보길 바란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분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내가 여행한 곳을 나열해본다.

○임피역사 : 1936년 일제 강점기 호남의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만든 군산선의 간이 역사. 옥구농민(1927년 전라북도 옥구의 일본인 이엽사농장에서 고율의 소작료를 인하 할 것을 요구하며 지역 농민조합과 청년단체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사건) 항쟁 기념비가 있음.

○이영춘가옥 : 일제강점기 구마모토 리헤이(일본인 대지주)가 봄과 가을 등 두 세차례 농장을 방문할 때 임시거처로 사용한 별장. 건축 당시에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들여 만들었을 만큼 당시에는 초호화 건물. 군산을 대표하는 고택 중 하나. 해방이후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이영춘박사가 거주한 곳. 

○군산 발산리 구 일본인 농장 창고에는 금과 서류뿐만 아니라 일본인 대지주가 불법 수집한 수많은 한국의 서화와 도자기 등 골동품을 보관하던 건물,  그 옆에는 전국에서 옮겨온 문화재.  

○진포해양공원 : 고려말1380년(우왕6년 금강하구의 진포에 침입해 온 왜구들을 고려의 수군이 격퇴한 “진포대첩” 당시 최무선 장군이 화포를 이용하여 왜구를 물리친 장소

○군산 근대건축관 : (구)조선은행 군산지점.일제강점기 침탈적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 은행.

○군산 근대미술관 : (구)일본 제 18은행 군산지점

○신흥동 일본식 가옥 : 일본인 지주의 생활상과 이들의 농촌 수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

○동국사 :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 참사문비와 소녀상을 볼 수 있음. 참사문비에는 “해외포교라는 미명 하에 일제가 자행한 야욕에 영합하여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인권 침해, 문화멸시, 일본 문화 강요, 존엄성 훼손 행위가 불교적 교의에도 어긋나며, 석가세존과 역대 조사의 이름으로 행해 왔던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이며 진심으로 사죄하며 참회한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 폭거, 창씨개명으로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 버렸는데, 조동종은 그 첨병이었다. 불법을 세속법에 예속시키고, 타민족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침탈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우리는 맹세한다.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소녀상

○채만식 문학관 : 탁류, 레디메이드 인생, 태평천하, 치숙 등을 쓴 풍자 작가. 친일로 변절 했던 작가들 중 유일하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작품을 남긴 작가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 호남 최초의 3.1운동 발생지인 군산의 역사 기록 전시. 2층 전시관에서 독립운동가 사진전

일제 강점기 초기 수탈 하기 위해 창고에 쌓아 놓은 쌀 

의열단원

만해 한용운

몽양 여운형

사진 ❙ 전병철, 오수영

민주노총 서울본부 중부지역지부는 3년째 조합원들과 함께 역사기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올해는 근대문화유산의 도시 군산을 찾아갔습니다. 해설사 선생님과 함께 하는 역사기행은 섬여행·맛집 탐방과는 다른 '앎의 즐거움'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소중한 기회를 주신 중부지역지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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