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인터뷰]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삶이다.
학습지 노조 소식지 여섯 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대교지부 정난숙 지부장님입니다. 1993년에 대교에 입사해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 베테랑 교사이기도 합니다.
언제 입사하셨나요?
93년도 12월. 우리는 시험 보고, 면접 보고 회사에 입사했어요. 별거 다했어요. 아이가 한 살 때, 11박 12일 연수를 받고 집에 왔더니 엄마를 몰라보더라고요. 너무 황당했어요. 그때는 학습지가 한참 잘 될 때였죠. 그때는 최저수수료율이 40%였어요. 지금 하고는 차이가 많이 나요. 회사에서 수수료를 야금야금 내린 거죠. 지금은 36% 까지 내려갔어요.
학습지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이를 낳고 뭔가 할 일을 찾다 보니, 경력이 단절되어 갈 때가 없잖아요. 아이들도 돌보며 할 수 있다고 하니까 한 거죠.
Q 그럼 거의 저녁이 없는 삶이 된 거네요? 저녁이 없다가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저녁이 생겼어요. 거의 30년 만에 저녁을 애들하고 먹네요. 아이들 어릴 때는 시어머니하고 같이 살았고, 그 다음엔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살았죠.
Q 결혼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잠깐 일하다가 결혼을 빨리했나 봐요. 원래 여성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아이 낳고 나니까 할 수가 없더라고요.
노동조합에 가입하신 것은 언제쯤이었나요?
처음부터 가입한 것은 아니구요. 부조리한 것이 많아서 지국에 말했었요. 그렇게 교사들끼리만 해결하면 될 줄 알았죠. 둘째 낳고 나서 서울로 지점을 옮겼죠. 서울로 와서 서울 지점에 다니면서 노조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서울지역모임에 함께 했어요.
Q 부조리 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대납(가짜 매출)을 하거나 교사에게 함부로 하는 것, 상조회에 개입하는 것이요. 대교는 2000년 9월에 노조가 생겼어요. 저는 96년도에 재입사를 했구요. 그땐 육아 휴직이 있어서 1년 전 자기 수수료율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지금은 육아 휴직도 없고 아예 해지를 하는 상황이죠. 점점 나쁘게 제도가 바뀌어 가고 있어요.
처음부터 노조활동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닌데, 한 번은 지점에 선생님 한 분이 노조 활동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어요. 노조 일을 하면서 수업도 해야 하고, 지방에도 내려가다 보니 휴회가 많이 났어요. 회사에서 그 교사를 해고하려는 것을 알았어요. “이건 말이 안 된다. 우리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고 일을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교사 책임이 아니지 않냐”하고 따졌어요. 그 때 제가 있던 지점 전교사 노조에 가입 하면서 해고를 막아냈어요.
하지만, 노조 일과 수업 병행이 힘들고, 회원은 얼마 안 되어 수입이 줄다 보니 그 교사는 결국 그만두게 되었죠. 지금 분위기는 일 못하면 나가야 하는 분위기이지만, 그때는 그래도 의리라도 있었죠. 지금은 삭막해요. 더 개인적인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죠.
Q 대교 노조는 상황은 어땠나요? 2001년 4월까지 조합원이 쭉 늘어나면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파업을 조직하려고 하다가 회사에서 지회장들을 집단해고 하면서 파업이 성사되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 때는 복수노조가 금지되던 때라 대교에서 어용노조를 만들어 노조 설립신고도 못했어요. 그래서 구몬과 웅진, 아이템플과 함께 산별 노조를 만들었죠. 2002년까지 노동조합 탈퇴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혼자 왕따가 되어 2년 정도 견디는 시간이 있었어요. 서울에서는 조합원들을 많이 만들어내지 못했죠. 성남에서 조합원들이 늘기 시작 했고, 그 동력으로 서울에서 조합원들을 많이 만들었어야 했는데 늘리지 못하니 힘이 없었어요. 본사는 서울에 있고, 회사에서는 계속 해고를 하고 지방으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힘이 집중되지 못했어요. 결국 대교지부장까지 해고 되면서 2005년 12월 본사앞에 천막을 치고 1년간 농성을 진행했었어요. 그렇게 투쟁을 통해 해고 막아내고 다시 복귀하기까지 참 많이 힘들었어요.
대교 지부장이 되어 일을 해보니 어떠신가요?
요즘은 책임감보다도 일반 교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죠. 너무 오래 했잖아요. 그때 그 지부장이 일을 잘했었어요. 사람도 잘 만나러 다니고 열심히 했어요. 복직하고 나서 회원이 늘어나지 않아 힘들어지고,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해서 그만두게 되었죠.
Q 지부장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조합원이 늘어야 좋은데, 조합원이 탈퇴 할 때마다 힘들죠. 설명을 많이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이익을 당할까 봐 가입을 꺼려 할 때도 힘들구요. 자기 권리를 위해 싸우면 관리자들이 쉽게 덤비지 못하는데, 그걸 못 넘어서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요. 예전에 퇴회 홀딩이 많았을 때, 창원도 가고 부산도 가고 그랬었죠. 전화하는 것도 힘들어요. 기본적으로 전화는 붙들고 살아야 해요. 자기 혼자 결정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조합원들이 생각이 달라 흩어지면 너무 속상하죠.
Q 지부장으로서 고민이나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기틀을 다지고 싶어요. 집행부를 든든하게 운영할 수 있게 간부들을 잘 만들고 싶어요. 운영위원, 지회장, 대의원도 만들어야 되고 신입간부들이 잘 정착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Q 코로나19로 많이 힘드셨을 텐데 회사 분위기나 교사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본사 앞에서 싸움을 시작했죠. 코로나19로 집회, 모임도 생각하지 못할 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움직여야 할 때 움직여야죠. 그냥 당하지 않고 노력했다는 점이 당당해요. 교사들이 모이게 만들었다는 것, 분회를 만들어서 운영위원들 회의도 하고, 기자 회견도 했죠.
Q 노조에 대해 바라는 것이 있나요? 노조도 사람이 하는 거라 소통이 중요한데, 중앙, 지부가 잘 소통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대표성을 띤 사람들이 더 소통을 하려고 노력을 하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어요. 노조 간부 일을 잘 마무리 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일 모래면 60을 바라보니까. 뒤를 이을 젊은이가 있으면 좋겠어요. 생기 있게, 활발하게 새로운 방법으로 이끌어 가는 간부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이젠 좀 지쳤어요.
Q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죠? 그래도 본사 싸움할 때 생각보다 많이 참가를 했어요. 늦게까지 있으셨던 분들도 있었어요. 밤 8시까지 집회를 했는데,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어 주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어요. 그래서, 운영위원들을 잘 만들었구나!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했어요. 일할 사람을 빨리 찾아야죠.
Q 코로나19 시대는 많은 변화가 있을텐데 대교는 수수료율을 50%로 변경했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모든 교사가 같이 재계약을 해 수수료 50%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재계약 시점마다 달라요. 이렇게 제도를 바꾼다고 하면서 재계약이 안되는 조건을 만들어 놓지 않을까 염려도 돼요. 새로운 제도를 한다고 하면서 그전 복지제도를 모두 없애버렸죠. 150만 원씩 주던 신입 정착 지원도 없앴고, 건강검진지원, 자녀 교육지원비, 경조사비도 없애버렸어요. 수수료를 올리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회사 이미지 차원에서 홍보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회사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매출이 중요하니 영업 스트레스를 계속 줄 텐데, 수수료율을 올리는 것으로 문제점들을 가려놓는게 아닐까요?
노조란 무엇일까요?
노조가 있으니, 교사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문제제기를 하고, 같이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한데, 교사 혼자 개인적으로 당하고 말도 못 하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것을 같이 해 나가는 것이 노동조합이잖아요. 그런 것들로 모이고 같이 풀어나가다 보면, 교사들 지위도 좋아질 수 있죠. 그러면 교사들도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회사도 이미지가 좋아지겠죠. 노동조합이랑 회사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지부장님에게 노동조합이라? 나에게 노동조합은 삶이다. 살면서 공기를 먹듯이, 노동조합은 사는 거 자체가 아닐까요!

[조합원 인터뷰] 나에게 노동조합이란 삶이다.
학습지 노조 소식지 여섯 번째 인터뷰 주인공은 대교지부 정난숙 지부장님입니다. 1993년에 대교에 입사해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는 베테랑 교사이기도 합니다.
언제 입사하셨나요?
93년도 12월. 우리는 시험 보고, 면접 보고 회사에 입사했어요. 별거 다했어요. 아이가 한 살 때, 11박 12일 연수를 받고 집에 왔더니 엄마를 몰라보더라고요. 너무 황당했어요. 그때는 학습지가 한참 잘 될 때였죠. 그때는 최저수수료율이 40%였어요. 지금 하고는 차이가 많이 나요. 회사에서 수수료를 야금야금 내린 거죠. 지금은 36% 까지 내려갔어요.
학습지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이를 낳고 뭔가 할 일을 찾다 보니, 경력이 단절되어 갈 때가 없잖아요. 아이들도 돌보며 할 수 있다고 하니까 한 거죠.
Q 그럼 거의 저녁이 없는 삶이 된 거네요? 저녁이 없다가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저녁이 생겼어요. 거의 30년 만에 저녁을 애들하고 먹네요. 아이들 어릴 때는 시어머니하고 같이 살았고, 그 다음엔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살았죠.
Q 결혼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잠깐 일하다가 결혼을 빨리했나 봐요. 원래 여성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아이 낳고 나니까 할 수가 없더라고요.
노동조합에 가입하신 것은 언제쯤이었나요?
처음부터 가입한 것은 아니구요. 부조리한 것이 많아서 지국에 말했었요. 그렇게 교사들끼리만 해결하면 될 줄 알았죠. 둘째 낳고 나서 서울로 지점을 옮겼죠. 서울로 와서 서울 지점에 다니면서 노조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서울지역모임에 함께 했어요.
Q 부조리 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대납(가짜 매출)을 하거나 교사에게 함부로 하는 것, 상조회에 개입하는 것이요. 대교는 2000년 9월에 노조가 생겼어요. 저는 96년도에 재입사를 했구요. 그땐 육아 휴직이 있어서 1년 전 자기 수수료율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지금은 육아 휴직도 없고 아예 해지를 하는 상황이죠. 점점 나쁘게 제도가 바뀌어 가고 있어요.
처음부터 노조활동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닌데, 한 번은 지점에 선생님 한 분이 노조 활동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어요. 노조 일을 하면서 수업도 해야 하고, 지방에도 내려가다 보니 휴회가 많이 났어요. 회사에서 그 교사를 해고하려는 것을 알았어요. “이건 말이 안 된다. 우리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고 일을 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교사 책임이 아니지 않냐”하고 따졌어요. 그 때 제가 있던 지점 전교사 노조에 가입 하면서 해고를 막아냈어요.
하지만, 노조 일과 수업 병행이 힘들고, 회원은 얼마 안 되어 수입이 줄다 보니 그 교사는 결국 그만두게 되었죠. 지금 분위기는 일 못하면 나가야 하는 분위기이지만, 그때는 그래도 의리라도 있었죠. 지금은 삭막해요. 더 개인적인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죠.
Q 대교 노조는 상황은 어땠나요? 2001년 4월까지 조합원이 쭉 늘어나면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파업을 조직하려고 하다가 회사에서 지회장들을 집단해고 하면서 파업이 성사되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 때는 복수노조가 금지되던 때라 대교에서 어용노조를 만들어 노조 설립신고도 못했어요. 그래서 구몬과 웅진, 아이템플과 함께 산별 노조를 만들었죠. 2002년까지 노동조합 탈퇴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혼자 왕따가 되어 2년 정도 견디는 시간이 있었어요. 서울에서는 조합원들을 많이 만들어내지 못했죠. 성남에서 조합원들이 늘기 시작 했고, 그 동력으로 서울에서 조합원들을 많이 만들었어야 했는데 늘리지 못하니 힘이 없었어요. 본사는 서울에 있고, 회사에서는 계속 해고를 하고 지방으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힘이 집중되지 못했어요. 결국 대교지부장까지 해고 되면서 2005년 12월 본사앞에 천막을 치고 1년간 농성을 진행했었어요. 그렇게 투쟁을 통해 해고 막아내고 다시 복귀하기까지 참 많이 힘들었어요.
대교 지부장이 되어 일을 해보니 어떠신가요?
요즘은 책임감보다도 일반 교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죠. 너무 오래 했잖아요. 그때 그 지부장이 일을 잘했었어요. 사람도 잘 만나러 다니고 열심히 했어요. 복직하고 나서 회원이 늘어나지 않아 힘들어지고,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해서 그만두게 되었죠.
Q 지부장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조합원이 늘어야 좋은데, 조합원이 탈퇴 할 때마다 힘들죠. 설명을 많이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이익을 당할까 봐 가입을 꺼려 할 때도 힘들구요. 자기 권리를 위해 싸우면 관리자들이 쉽게 덤비지 못하는데, 그걸 못 넘어서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요. 예전에 퇴회 홀딩이 많았을 때, 창원도 가고 부산도 가고 그랬었죠. 전화하는 것도 힘들어요. 기본적으로 전화는 붙들고 살아야 해요. 자기 혼자 결정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고, 조합원들이 생각이 달라 흩어지면 너무 속상하죠.
Q 지부장으로서 고민이나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기틀을 다지고 싶어요. 집행부를 든든하게 운영할 수 있게 간부들을 잘 만들고 싶어요. 운영위원, 지회장, 대의원도 만들어야 되고 신입간부들이 잘 정착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Q 코로나19로 많이 힘드셨을 텐데 회사 분위기나 교사들 분위기는 어떤가요? 본사 앞에서 싸움을 시작했죠. 코로나19로 집회, 모임도 생각하지 못할 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움직여야 할 때 움직여야죠. 그냥 당하지 않고 노력했다는 점이 당당해요. 교사들이 모이게 만들었다는 것, 분회를 만들어서 운영위원들 회의도 하고, 기자 회견도 했죠.
Q 노조에 대해 바라는 것이 있나요? 노조도 사람이 하는 거라 소통이 중요한데, 중앙, 지부가 잘 소통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대표성을 띤 사람들이 더 소통을 하려고 노력을 하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어요. 노조 간부 일을 잘 마무리 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일 모래면 60을 바라보니까. 뒤를 이을 젊은이가 있으면 좋겠어요. 생기 있게, 활발하게 새로운 방법으로 이끌어 가는 간부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이젠 좀 지쳤어요.
Q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죠? 그래도 본사 싸움할 때 생각보다 많이 참가를 했어요. 늦게까지 있으셨던 분들도 있었어요. 밤 8시까지 집회를 했는데,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어 주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어요. 그래서, 운영위원들을 잘 만들었구나!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했어요. 일할 사람을 빨리 찾아야죠.
Q 코로나19 시대는 많은 변화가 있을텐데 대교는 수수료율을 50%로 변경했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모든 교사가 같이 재계약을 해 수수료 50%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재계약 시점마다 달라요. 이렇게 제도를 바꾼다고 하면서 재계약이 안되는 조건을 만들어 놓지 않을까 염려도 돼요. 새로운 제도를 한다고 하면서 그전 복지제도를 모두 없애버렸죠. 150만 원씩 주던 신입 정착 지원도 없앴고, 건강검진지원, 자녀 교육지원비, 경조사비도 없애버렸어요. 수수료를 올리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회사 이미지 차원에서 홍보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회사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매출이 중요하니 영업 스트레스를 계속 줄 텐데, 수수료율을 올리는 것으로 문제점들을 가려놓는게 아닐까요?
노조란 무엇일까요?
노조가 있으니, 교사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문제제기를 하고, 같이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한데, 교사 혼자 개인적으로 당하고 말도 못 하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것을 같이 해 나가는 것이 노동조합이잖아요. 그런 것들로 모이고 같이 풀어나가다 보면, 교사들 지위도 좋아질 수 있죠. 그러면 교사들도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회사도 이미지가 좋아지겠죠. 노동조합이랑 회사가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지부장님에게 노동조합이라? 나에게 노동조합은 삶이다. 살면서 공기를 먹듯이, 노동조합은 사는 거 자체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