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의 그림]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소식지 편집위
20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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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이은옥 조합원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그림을 잘 모르며 그림전시장을 자주 찾는 고상한 취미의 소유자도 아니다. 클림트의 <키스>가 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피카소의 조각이나 도자기는 내 아이가 초등학생 시절 미술학원에서 만들어 온 조잡한 꽃병과 무엇이 달라 위대하단 평을 듣는지 잘 알지 못 한다. 그러나 살다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처음 고흐의 그림을 봤을 때가 그랬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내가 가르치는 중학생의 국어교과서를 무심히 펼쳐보다 고흐의 <별밤>에 대한 그림감상문을 읽게 되었다. 아마 국어교과서 한 단원 중 감상문 쓰기가 있었고 예로 누군가의 글을 소개했었던 것 같다. 글 옆에 자그마하게 실려 있었던 고흐의 <별밤>은 이상하리만치 내 맘을 끌었고 언젠가는 직접 그 작품을 보고야 말겠다는 강한 열망도 함께 가졌었다. 그 후 그리 오래지 않은 어느날 나는 서울 한복판에서 <별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아..그러나 엄청난 인파가 몰려 온 전시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고 조용히 작품 앞에서 그림을 보고 느끼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인파에 떠밀려 다니다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저 멀리 걸려있는 그림을 사람들의 머리 위로 잠시 훑어봤을 뿐이었다. 기대와 달리 그림의 규모가 상당히 작아서 놀랐던 기억도 난다. 아무튼 그 후 언젠가 생일에 고흐의 화집을 선물 받았고 가끔씩 책을 펼쳐보며 그 따뜻한 색채와 야릇한 설레임을 주는 몽환적 분위기에 빠져들곤 했었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을 본 것은 코로나가 모든 활동을 무력화시켰던 한여름, 휴가를 맞았으나 딱히 갈 곳이 없던 지난 8월의 어느 날이었다. 세로 1m 가로 2m가 넘는 대작이며 <게르니카>, <시체 안치소>와 함께 피카소의 대표적인 현실 고발작품이다.

벌거벗은 여성들과 어린 아이들이 서 있다. 여자들은 공포에 질려 울거나 체념한 표정들이다. 임신한 듯 배가 볼록한 여자도 있다. 조금 큰 아이는 무서움에 질린 표정으로 어른 뒤에 숨으려 한다. 아..그런데 아주 작고 어린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흙장난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맞은편엔 무장한 사내들이 총을 겨누고 있다. 마치 고대 로마 병사처럼 갑옷과 투구를 쓰고 검을 높이 치켜든 모습도 보인다. 여인들은 자기들을 보호하거나 대항할 아무런 무기도 없다.

왜 하필 벌거벗은 모습일까? 그리고 그들은 무슨 죄를 지었을까? 산에 숨어있는 빨갱이들과 내통할 수도 있다는 조금의 가능성만으로도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광기가 허용되는 것이 전쟁이 아닐까? 빨갱이 자식들은 씨를 말려야 한다는, 오직 절멸을 목적으로 행한 민간인 학살이 이념이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많이 자행되었던가? 작품의 제목을 <학살>이 아니라 굳이 <한국에서의 학살>이라 이름 붙인 것은 이토록 피로 얼룩진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려는, 피카소의 예술적 헌정이 아닐까 싶다.

작품 하단에 그림에 대한 해설이 있어서 읽어보았다. 뒷 배경에 초록색 산과 들은 희망을 상징한다는...... 그러나 나는 그 의견에 동의 할 수 없었다. 총부리 앞에서 천진하게 놀고 있는 벌거 벗은 아이는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젊은 여인은 총에 맞기 전 능욕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 도대체 희망이라니..무슨 근거인가?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기 얼마 전 한강 작가의 신작<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제주에서의 민간인 학살' 소설을 읽는 동안 여러번 여름에 보았던 피카소의 그림을 떠올렸다. 전쟁과 학살은 힘없는 여성과 아이들에겐 더더욱 가혹하다.

그림 감상을 마치고 예술의 전당을 둘러보다 피카소의 도록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잠시 망설이다 지나쳐 버렸다. 아무래도 고흐의 화집을 펼쳐보며 느끼는 짧은 행복을 피카소의 그림에서는 느끼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만큼 그의 그림은 사실적이고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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