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책] 시집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

소식지 편집위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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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


 글ㅣ 조미영 조합원  


조합원 남편분이 시집을 냈다고 해, 응원 차원으로 구입을 했다. 처음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이란 시집 제목은 뭔가 조폭들의 기술을 말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니면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기술을 말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시집을 펼쳤다. 시집을 내고 싶었던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나는 시를 도무지 이해를 못 하는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이다. 어려운 은유나 비유도 잘 모르겠고 해서, 거의 산문 같은 박노해 시인의 시를 선호한다. 노동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박노해 시인의 시와 비슷했고, 그래서 반가웠다.

여러 시 중에서 '기술자'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상상은 자본으로 가서

생산 매뉴얼이 되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용 매뉴얼이다

사용 매뉴얼은 기술이 아니다

생산 매뉴얼이 가치의 원천이다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중에서

 

자본이 없는 노동자는 상상이 기술이고, 그 상상과 창의성을 팔고 임금을 받는다. 상상이 자본으로 가서 생산 매뉴얼이 된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 사용 매뉴얼만 돌아온다. 우리는 생산 매뉴얼을 갖고 있기보다는 소비자의 정체성만 가지고, 사용 매뉴얼이 기술인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기 쉽다. 우리는 왜 생산 매뉴얼을 잃어버렸을까?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을까?

 

그는 자본이 싫다

자본을 싫어하는 기술자는

자본이 싫어하는 기술자다

그는 자본에 팔지 않는 기술을

자본이 살 수 없는 기술을 꿈꾼다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중에서

 

자본주의에 속해서 살고 있기에, 대놓고 자본이 싫다고 말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는 것이 바쁘다는 이유로,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남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끼며 살기 쉽다. 서로를 위한 공동체를 만들고, 연대를 하는 일상을 생각하지 못하고,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를 해 자본을 만드는 것이 최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인 일상의 안녕만을 추구하기 쉽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저자의 편안한 언어가 소중했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협동조합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본에 팔지 않는 기술을 상상하고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고 느낀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투명하고 민주적인 소통으로 새로운 기술을 꿈꾸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는 누구도 가로채지 못하는

온전히 그의 것이며 모두의 것인

기술을 말하는 기술자다

말의 기술자

세상에 없는 말을 기술하는 기술자다

[기술자가 등장하는 시간]중에서

 

아직 나는 자본이 싫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복지제도가 좋은 나라가 아니기에 경제적인 독립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이나 월급이 아닌 다른 것으로 움직이는 세상을 꿈꾼다. 단단한 철학과 창의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세상에 없는 말을 하고, 더 좋은 세상을 상상하는 기술자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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