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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어둠 속에서도 꽃 핀 쪽으로

재능교육지부
2025-06-04
조회수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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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읽었던 <소년이 온다> 를 다시 꺼내 들었다. 나에게 한강은 언제나 버거운 작가이기에 그의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약간의 망설임과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 무거움과 진중함이 내가 감당하기에는 언제나 과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몇 년 사이 한강 작가는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작가가 되었다. 전 인류가 주목하는 문학적 쾌거 앞에서 조금의 흥분도 없는 작가의 인터뷰를 TV로 보며 그의 문학적 사유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궁금했었다.

소설은 각 장마다 시점을 바꿔가며 전개된다. ‘너는’ 으로 시작하는 동호의 이야기. 80년 5월의 광주. 만 15세 소년 동호는 총을 맞고 쓰러진 친구 정대를 뒤로 하고 몸을 피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 어머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라고 되뇌어 보지만 죄책감을 안고 있는 어린 소년은 목숨이 위태로운 극한 상황에서도 도청 안 시체 안치실을 떠나지 못한다.

키가 작고 여린 소년 정대가 1인칭 시점으로 들려주는 죽음 이후의 이야기는 한 장 한 장이 고통이다. 망자가 된 정대는 다른 수많은 죽음들과 어디론가 실려간다. 열십자 모양으로 높이 쌓은 인간탑의 아랫부분에 눌려 있는 정대는 멈추지 않는 생각들 떄문에 격렬한 힘이 생겨난다. 누가 날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차디찬 방아쇠,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 자신을 조준한 눈,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 그리고 가장 사랑하고 의지했던 누나, 언젠가 떨리는 가슴으로 안아보고 싶었던 여자. 정대는 그런 사춘기 소년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도청을 사수했던 사람들은 각자의 아픔을 지닌채 삶을 이어가고 있다. 모진 고문,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상황을 견뎌야 했던 날들. 다시 학교로 돌아간 고3 여학생은 5월이 지난지 불과 몇 달 되지 않은 여름날, 도청 앞 분수대에서 춤추듯 물이 솟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누구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지만 학생식당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는 군인들을 보며 다시 그날을 떠올린다. 그녀의 삶은 도청에서의 마지막 밤에 멈추어 버린듯하다. 여성들을 안전한 곳까지 바래다 주고 다시 도청을 향해 걸어가던 진수 오빠의 마지막 미소와 뒷모습, 체육복 바지에 교련복을 입고 솜털 보소보송한 뺨을 가진, 어리디 어린 동호의 마지막 얼굴, 그녀의 영혼은 이미 그때 산산이 부서졌다.

매 장이 모두 그러하지만. 누군가에게 증언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4장과 논문을 준비하는 학자에게 녹취를 의뢰받은 선주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5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읽기 힘든 부분이었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단과 문단사이를 써내려갔을 작가를 여러번 떠올려 보기도 했다. 실제로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의 첫부분은 ‘어떤 도시’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나서 오랫동안 아팠던 작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아마 자기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교대 휴학생이자 도청 소회의실에서 조원들을 지휘했던 “나”는 복역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랜 방황 끝에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시종일관 냉소적이고 반항적이며 따져묻듯 증언한다. 내가 그것을 선생에게 설명해야 합니까? 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한다. 그는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존재였다. 날마다 싸운다고 했다. 살아있다는 치욕을 견뎌야 한다고 했다. 오직 죽음만이 이 굴레를 벗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던 미싱사 선주는 노동운동의 경험과 총기소지를 이유로 가혹한 성적 고문을 당한다. 그녀의 삶역시 교대생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늘 꾸는 같은 꿈, 아무도 믿지 못하고 ,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는 삶. 죽기 위해 다시 ‘그 도시’ 에 간 선주는 대학생들이 붙여놓은 희생자들의 사진속에서 총에 맞은 정미의 시신을 발견한다.

왜 소설의 제목이 <소년이 온다> 일까 생각해 봤다. 동호가 실제로 살아서 등장하는 부분은 불과 40여 페이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든 등장 인물들의 마음 속 상처와 아픔 저변엔 늘 소년 동호가 있다. 오로지 친구 정대를 찾고 말겠다는 의지 하나로 도청에 남은 아이. 동호는 계엄군이 도청을 공격했을 때 진수형의 조언대로 손을 들고 항복했다. 그리고 계엄군이 쏜 총알이 어린 소년의 가슴을 관통했다.

아 그리고 마지막 장, 동호의 어머니. 난 이렇게 담담하면서 슬픈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그 머시매를 따라갔다이’ 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독백은 읽는 사람의 가슴을 무너져 내리게 한다. 형이 물려준 교복을 입은, 허리가 길고 팔다리가 가늘어서 옷맵시가 났던 어린아들. 이제 노인이 된 어머니는 중학생 아들과 뒷모습이 똑같은 아이를 하염없이 따라간다. 사랑채를 세 놓지 않았더라면, 정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아들은 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다가도 아들과 해맑게 웃으며 놀던 정대를 떠올리며 금방 미안해 하는 착한 어머니. 학살자 전두환이 광주에 온 날 어머니는 경찰서 벽에 붙은 사진을 발로 밟아 깨 버리고, 병원 옥상에 올라 소리친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

나는 늘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가 궁금했다.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도 인간이고, 남의 목숨을 눈하나 꿈쩍 하지 않고 없앨 수도 있는 것도 인간이니까. 인간이 존엄한 존재이다 라는 정의는 과연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말일까, 우리는 모두 고귀한가. 양심을 지키는 일이 목숨보다 소중한 걸까.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보편적이지 않은 경험을 했고, 이후 아물지 않은상처 속에서 살아왔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했거나 정신병동에 보내졌다. 학살자에 대한 분노를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혼자 살아남았음에 괴로워하고, 어린 생명의 가슴에 총알이 박히는 모습에 상처를 입었으며, 심지어 계엄군에게 총을 쏘지 못했다. 살아있는 심장에 총을 겨눌 수 없었다고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 간다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학살자는 어떤 마음일까, 그들은 잘 살고 있을까, 혹시 신이 이들을 심판하지는 않을까...

두 번을 읽고 나서도,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더 흘렀음에도 나는 이 질문을 똑같이 하고 있다.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밝혔듯 광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활활 타올랐던 용산의 재개발 지구에서,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모습에서,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울려대는 노조 텔레그램 소통방 소식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의 선한 본성과, 이타심과, 양심을 지키는 일이 고귀한 가치임을 믿고 싶다. 어머니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아기 동호의 말처럼. 그 희망의 말처럼 말이다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그늘이 아닌, 꽃이 핀 쪽으로 걸어가며, 무거워 지는것과 깊어지는 것을 혼동하지 않으며 그렇게 살고 싶다. 몇 년 후 <소년이 온다>를 또다시 읽고 난 후 그런 나를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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