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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전쟁의 본질과 국제주의

바람
2024-05-26
조회수 22

이형로

들어가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이 넘었다. 이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약 1만 명이 사망했고, 양측의 군사 사상자(사망 및 부상자)는 50만 명을 넘어섰다. 전쟁을 피해 난민이 된 사람은 630만 명(유엔난민기구는 국내 실향민 370만 명, 난민 630만 명을 합쳐 우크라이나 난민 수를 1,000만 명으로 발표했다)이며, 이 중 수십만 명은 군 복무를 피해 도망치거나 난민이 되었다. 이 무자비한 전쟁 폭력 속에서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계속 돈을 쏟아붓고, 러시아가 공세를 계속 유지하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고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2년간의 잔혹한 전쟁은 가자지구에서 7개월간 벌어진 조직적인 학살과 파괴로 가려져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있다.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에서 1,200명을 학살한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거의 모든 곳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했고, 끔찍한 학살이 동반된 지상전을 펼쳤다. 가자지구에서는 현재 3만 5천 명 이상(그중 45%는 어린이)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8만 명에 달한다. 옥스팜에 따르면, 이는 최근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다(시리아에서는 하루 100명 미만이 사망하는 데 비해 가자지구에서는 하루 250명이 사망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의 전쟁은 훨씬 더 광범위한 세계적 갈등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이며, 현대 모든 제국주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주요 희생자는 노동계급 전체가 될 것이다. 두 전쟁은 어느 쪽도 타협할 수 없는 수십 년에 걸친 분쟁의 산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전쟁은 적(敵)의 완전한 패배로만 끝날 뿐,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주로 경제적 고갈로 인해 잠시 멈췄다가 언젠가 다시 발발할 뿐이다.

 

두 전쟁은 민족주의 기치 아래 벌어지고 있다. 하나의 팔레스타인 국가나 하나의 이스라엘 국가 같은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국가는 계급으로 나뉘며, 팔레스타인 국가 또는 이스라엘 국가라는 것은 실제로는 팔레스타인 또는 이스라엘 자본가계급의 국가를 의미한다. 과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격렬한 계급투쟁이 보여주듯이 노동계급은 두 국가 모두에서 착취자들을 지지하는 데 관심이 없다.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이 착취자를 위해 죽고 계급적 이익을 잊도록 설득하는 대표적인 거짓 이데올로기이다. 이른바 좌파의 다양한 그룹과 일부 아나키스트는 ‘반(反)제국주의’ 또는 ‘차악(次惡)’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또는 다른 쪽을 지지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 그리고 다른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사이 전쟁이며, 반(反)제국주의 성격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전쟁은 주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싸우는 세계 전쟁으로 향하는 단계에 있다. 진정한 반제국주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투쟁이며,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계급투쟁에 기초하는 것이다.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일반화된 전쟁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다. 60년 동안의 성장률 하락(‘전후 호황' 종식 이후에는 더욱 빠르게 하락)으로 인해 위기가 심화하자 세계 부르주아지는 체제 유지를 위해 지난 40년 동안 세계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해 왔다. 자본주의 체제는 특히 '글로벌 사우스'(남미, 중미, 아시아, 아프리카 대부분)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과도한 착취, 금융규제 완화, 그리고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부채로 미래를 저당 잡히며 유지되고 있다. 그 결과 임금, 연금, 사회 서비스의 삭감을 동반한 대규모 투기가 발생했고, 극소수의 부유층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다수 인류는 가난해지는 세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 자본주의는 경제, 사회, 환경, 건강까지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고, 이 체제는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절반)의 부유한 국가들도 막대한 부채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른바 '브릭스(BRICS)'의 상황도 나아지지 않고 있으며, 중국은 2007~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와 같은 금융 투기 위기(주로 부동산)에 직면해 있고, 아르헨티나와 같이 한때 부유했던 국가들은 금융 붕괴에 직면해 있다. 국제적으로 투기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그 규모는 세계 GDP의 13배에 달한다. 한편 2023년 1월 전 세계 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349%인 300조 달러를 기록했으며,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세계 경제 위기는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도 사회 붕괴를 일으키고 있다. 이로 인해 이미 현금이 부족한 '부유한' 국가로 전 세계적인 이주의 물결이 일고 있다. 경제적 기회가 점점 더 제한되는 국가에 도착하는 이민자들은 (이민자가 필요했던 과거와 달리) 불청객으로 인식되고 있다. 가장 가난한 노동계급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악용하는 분노의 원천이다.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에서 나타난 '타인'에 대한 공포는 양측의 모든 국민에 투여할 수 있는 민족주의의 강력한 독(毒)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생산이 지구에 초래한 환경 재앙까지 더해지고 있다. 사헬 지역에서는 기온 상승으로 인해 사하라 사막이 수십 년 동안 남쪽으로 점점 더 이동했다. 이로 인해 목축업자들이 경작자들과 갈등을 겪게 되었고, 부르키나파소에서 니제르, 차드, 말리,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을 거쳐 수단까지 제국주의 열강과 제국주의 지하디스트 지망생들이 이러한 갈등을 이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쟁은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점점 더 많은 국가가 붕괴하거나 이웃 국가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카메룬, 우간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예멘, 시리아, 미얀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세르비아-코소보,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 잠시 소강상태인 분쟁도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다른 사건으로 변형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의 지형 변화는 생활수준에 대한 위협과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 재앙이라는 측면에서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희토류와 코발트와 같은 기타 광물 등 신기술과 이에 필요한 원자재를 둘러싼 무역 전쟁이 심화하면서 갈등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평화로운 선택지가 바닥난 국제 부르주아지들은 점점 더 일반화되는 제국주의 분쟁의 각본을 쓰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경쟁국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그 결과 제국주의 경쟁, 특히 세계 주요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무역에서 달러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있고, 중국은 2049년까지 세계 1위가 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행사하는 세계 지배를 원한다. 여기에서도 타협의 여지는 없다. 최근 미국은 중국을 주요 경쟁국으로 여긴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심지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논의할 때조차도 미국은 러시아만큼이나 중국을 공격한다. 그리고 중국은 우크라이나에서 평화 조정자 역할을 강구 하면서도, 여전히 반항적인 지방으로 간주하는 대만에 대한 미국의 '간섭'을 비난한다. 양측은 대만 주변 해역에서 끊임없이 위험한 군사 러시안 룰렛 게임을 벌이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지만, 스스로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의 체제 위기가 지속할수록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전쟁에 의지하게 된다. 처음에는 제국주의 열강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대리전쟁이 벌어진다. 재정 자원과 무기가 제공되고 향후 원조에 대한 고상한 약속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면 원조를 받는 국가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결과 제국주의가 지속적으로 전쟁을 부추기거나 촉발하는 역학 관계가 형성된다. 통제하기 어렵고 억제하기 거의 불가능한 역학 관계는 강대국 사이의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이라는 영구적인 위험을 수반한다. 이란, 중국,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시나리오가 점점 더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두 전쟁의 결과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몇 가지 결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우선 이 전쟁은 세계의 전략적 분열을 강화했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적국인 러시아, 중국,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해 왔다. 이는 그 자체로 전쟁 행위이며, 이들 세 국가는 편의상 반미동맹으로 결속했으며, 지난 두 해 동안 더욱 밀접해졌다. 다른 한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전에 미온적이었던 유럽 나토(NATO) 회원국들을 미국 뒤에 합류하게 했다. 심지어 스웨덴과 핀란드까지 나토 회원국이 확장되었다. 우군을 확보하고 전 세계 다른 국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미국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카드를 사용하면 이념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또는 중동의 어느 나라도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 캠페인에 동참하지 않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비참한 결과는 미국의 권위를 약화했고, 심지어 인도와 같은 국가들조차 러시아의 석유를 구매하여 러시아를 돕고 있다.

 

또 다른 결과는 새로운 군비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2022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냉전 종식 이후 유럽에서 연간 지출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러시아가 군사비를 두 배로 늘렸고,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오래된 무기 제조 생산 라인을 긴급하게 개조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무기 제조사의 주가는 급등했다. 지난 세기 세계 지배를 위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도 비슷한 군비 경쟁이 선행되었다. 또 다른 경제적 영향은 '에너지'와 '식량' 안보를 위한 노력이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심각하다. 자급자족을 위한 시도는 세계시장을 더욱 약화할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와 긴급한 생태 재앙을 막기 위한 조치마저 무시할 수 있다.

 

가자지구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위험한 국제적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고, 전쟁에서 타협할 수 있는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전쟁은 이제 사회 전체를 집어삼키며 반대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경제와 인류를 말살하는 총체적인 전쟁이 되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은 제국주의 정책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정책을 큰 문제로 여기더라도, 이스라엘 지배계급에 60년 이상 백지수표를 줬기 때문에 단호하게 대처할 수 없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불명예스럽게 철수한 미국은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국을 지원해야만 했다. 따라서 미국은 이제 스스로 고객 권력의 포로가 되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신속히 지원했고, 헤즈볼라와 이란과 같은 다른 국가들이 가자지구 공격에 대응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항공모함을 지중해 동부로 보냈다. 그러나 가자지구 주민에 대한 집단학살을 지속할수록 더 큰 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바이든은 이스라엘에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듣지 않았다. 최근 바이든은 이스라엘이 라파에서 대규모 공격에 나선다면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직접 밝혔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폭탄 선적을 중단했다고 확인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이스라엘에 10억 달러 규모의 추가 무기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와의 균열이 깊어지는 것을 꺼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자지구 전쟁은 예멘으로 확산했다. 비록 보편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후티 민병대 정부는 사실상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후티는 팔레스타인 지원 아래, 홍해의 선박을 공격했으며, 이스라엘에 미사일, 드론 공격까지 벌였다. 이는 전 세계 항로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과 영국은 예멘을 폭격했다. 단기적으로 홍해와 수에즈 운하가 폐쇄되면서 상업용 선박이 덜 위험한 항로를 찾게 되면 유럽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당연히 노동계급에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북쪽 국경에서 하마스보다 훨씬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이란의 대리 세력 헤즈볼라는 지금까지 가자 지구 주민들에 대한 지원에 신중해 왔다. 이는 레바논 해안에 미군 함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레바논 자체의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국경을 넘어 로켓과 탱크 포격이 오갔고 남부의 많은 레바논 주민들이 다시 피난을 떠나야 했지만, 여기서 그쳤다. 이는 수년간의 부패와 잘못된 관리로 인해 여전히 극도로 취약한 레바논 경제가 베이루트 항구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로 인해 더욱 악화했기 때문이다. 모든 집권 세력은 불신을 받고 있다. 헤즈볼라가 도발한 또 다른 이스라엘의 침공은 격퇴될 수 있지만, 오랫동안 고통받는 레바논인들에게는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헤즈볼라 자체도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2022년에 레바논 정부(헤즈볼라가 속한)는 이스라엘과 카리쉬와 카나 해상 가스전의 공동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레바논은 가스와 수익이 필요하다.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하마스에 대해 제한적인 구두 지원만 하고, 리비아 같은 아랍 국가에 이스라엘에 대한 석유, 가스 공급 중단을 요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이스라엘은 자급자족할 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튀니지로 수출하고 있다). 무역의 이익이 연대의 이익보다 우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제국주의 정책의 많은 모순 중 하나에 불과하다.

 

노동계급과 전쟁

 

자본주의의 전쟁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끔찍한 잔인함을 초래한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자'에게는 시장 경쟁자를 제거하고 그들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으며, 이는 구조적 위기에 처한 현대 경제의 생산 요구에 유용하다. 이는 원자재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의미하며, 또한 이윤율을 높이려는 시도이며, 결과적으로 자본 자산과 가치의 파괴를 통해 축적 주기를 새롭게 시작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폭탄이 있든 없든, 현재의 위기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의 전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프리카를 향한 새로운 쟁탈전과 태평양에서의 중국과 미국의 작전은 그들 대리인의 군사적 움직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세계 노동계급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미래는 파괴와 죽음, 전례 없는 잔인한 야만으로 가득 찬 미래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중동과 홍해, 콩고에서 수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무력 분쟁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세계 노동계급의 고통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폭력의 확대는 양측의 평화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히 개별 정치인이나 국가의 악의적인 목적 때문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체제가 세계 지배계급을 군사주의 공격 상태로 몰아넣은 논리적 결과이다.

 

우리는 세계대전의 근처에 와 있다. 오늘날 하르키우, 헤르손, 가자에서 주민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주변에 어떤 일이 닥칠지 미리 보여준다. 제국주의 전쟁은 전면전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양측 군대 또는 두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두 제국주의 이해관계 사이의 전쟁이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는 모든 지역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이다. 부르주아지가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국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수단과 국가를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1914년 민족주의 바이러스는 1차 세계대전의 학살로 이어졌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도 감염되어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결의를 포기했다. 이들 모두는 노동자들을 학살에 나서게 부추기고 파업권을 포기할 구실을 찾았다. 소수의 국제주의자만이 전쟁에 반대했고 그들 대부분은 조롱을 받았다.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하라는 레닌의 요구가 전쟁 반대 투쟁을 사회주의 투쟁으로 만들겠다는 침머발트 좌파의 결의안에 반향을 일으키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 당시와 그 이후 노동계급에 대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배신은 전쟁이 종식되기까지 더 많은 학살의 기간이 남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날 양측의 잔학 행위는 어떤 종류의 반대 의견도 압살한다. 전쟁이 시작되면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가자지구와 같은 곳에서는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전쟁을 반대하거나 징병을 거부하는 이들과 전 세계의 모든 난민에게 지지를 보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도주의적 평화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희생자들에 대한 선의의 동정은 제국주의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없다. 전 세계에는 모든 전쟁과 조국 방어 투쟁을 거부하는 것이 노동계급의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많은 조직이 있다. 역사적으로 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민족주의 흐름에 맞서는 조직이 있었다. 그들은 반전 투쟁이 사회주의로 향하는 투쟁이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끝까지 맞서 싸웠다. 우리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어떤 민족국가나 잠재적인 민족국가도 옹호하지 않는다. 코뮤니스트혁명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모든 국가와 국경을 폐지하여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전쟁이 만든 비참함을 피해 이주하거나 난민이 될 필요가 없는 세계 인류 공동체를 만들 것이다.

 

세계 노동계급만이 이전의 모든 전쟁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전쟁의 위험에 맞설 수 있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착취당하고 전시에는 총알받이로 내몰린다. 하지만 그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자신의 지형에서 싸우는 계급으로 행동한다면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쟁은 자본의 위기로 인해 발생한다. 전쟁은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전쟁이다. 그러나 전쟁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프롤레타리아가 벌이는 전쟁이다. ‘민주주의’ 또는 ‘국익’의 수호, 무력으로 강제해야 하는 ‘보편적’ 종교적 원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있다. 전쟁을 '국가 정화'의 도구로 이상화하는 신구 인종주의와 동성애 혐오 이데올로기는 말할 것도 없다.

 

전쟁과 관련하여 자신의 이익에 프롤레타리아트를 이용하는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무기는 이미 풍부하게 갖추어져 있다. 따라서 세계 노동계급이 독자적인 전략과 전술을 갖춘 국제 정당(세계혁명당)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노동계급을 현혹하는 수많은 함정으로 포장된 길을 넘어서 나가야 한다.

 

모든 민족주의 반대! 국제주의 방어!

 

이른바 ‘좌파’세력, 특히 ‘혁명적’이고 ‘국제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세력 상당수는 자본주의가 재생산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홍해 등에서 계속되는 전쟁에서 ‘옳은 편’을 선택하거나 ‘차악"을 지지하려고 노력하면서 허둥대고 있다. 보기를 들어, 트로츠키주자 일부는 우크라이나 '조국 수호'를 지지하기 위해 러시아의 제국주의 야욕을 비난하고, 스탈린주의자들은 ’러시아 방어‘를 촉구하기 위해 미국과 나토 제국주의의 군사력을 비난한다. 마찬가지로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는 하마스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논거로 사용된다.

 

심지어 SWP는 하마스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그들은 “전쟁 없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해결책은 어느 한쪽의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경쟁을 낳는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억압받는 민족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의미한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하마스 살인자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주장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을 포함한 민간인 살해와 여성 강간을 '정당화'하는 하마스라는 전쟁기구를 지지하는 SWP는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자본주의의 중요한 병사 모집 수단 중 하나이다. 하마스 군사 및 정치 세력(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반제국주의' 단체들)은 실제로 '반(反)제국주의' 세력이 아니라 여느 민족해방 '운동'과 마찬가지로 강대국들이 곳곳에 배치한 비밀 기관과 군사 자산을 이용해 만들어낸 자본주의 국가 세력이다. 그들은 스스로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노동계급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와 탄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그들과 SWP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하마스와 같은 지하디스트, 파시스트 민족주의의 산물을 옹호하는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이러한 모든 입장은 제국주의 분쟁에서 용어 취향에 따라 '약자', '반식민지 국가' 또는 '억압받는 민족국가'는 ’옳은 편‘이기 때문에 방어해야 한다는 부르주아 도덕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은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로 노동자들에게 전쟁 지지를 촉구한다. 억압받는 민족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 사이의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아가 자국 지배계급을 위해 싸우다가 희생당하는 것을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왜곡한다.

 

하지만, 제국주의 시대에 '피억압국'이든 '억압국'이든 특정 자본주의 세력이 반(反)제국주의의 한 축을 구성할 수 없다. "제국주의 정치는 어떤 한 국가나 몇몇 국가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 발전에서 특정 성숙 단계의 산물이다. 그것은 국내에서도 국제적인 현상이자 그 모든 상호관계 속에서만 인식될 수 있고 그로부터 어떤 국가도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분할될 수 없는 전체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유니우스 팸플릿」 7장, 1915년)

 

또한, 제국주의 분쟁에서 경제 및 군사 발전 측면에서 완전히 같은 수준에 있는 국가들이 서로 대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결정적인 기준은 어느 계급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모든 제국주의 전쟁의 비극적 공통점은 양쪽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유혈 충돌이며, 양쪽 모두에서 노동계급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자국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죽는다.

 

이러한 배경에서 ’민족 자결권, ‘민족 해방 전쟁’ 또는 ‘민족의 독립’에 대한 주장은 현재 ‘반식민지 운동’으로서의 하마스 또는 ‘반제국주의 세력’으로서의 후티 반군 등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민족해방투쟁이 억압에 반대하기 때문에 반(反)제국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은 많은 나라에서 억압당하는 소수가 있으므로 사실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수가 자신의 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지 일부와 동일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노동계급에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을 자본주의 도살장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반(反)제국주의 투쟁이 아니다. 민족주의 운동은 단지 군사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제국주의 강대국에서 후원자와 지지자를 찾는데 의존한다.

 

오늘날 어떤 국가도 세계시장에서 자본주의 경쟁의 요구를 벗어나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우리는 맑스가 특정 독립투쟁을 지지했다거나 레닌이 민족자결권을 옹호했다고 끊임없이 주장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기계적 '맑스주의'는 맑스주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대답한다.

 

맑스는 자본주의 초창기에, 봉건적, 전(前)자본주의적 구조에 대한 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고 믿었던 민족운동을 지지했다. 맑스와 엥겔스에게 민족운동이 진보적 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는 당시 유럽 대륙 전체에서 반동의 보루였던 러시아 절대주의의 권력에 도전하는지였다. 따라서 독일과 폴란드 민족운동은 지지를 받았지만, 많은 슬라브 민족주의는 반동적이라고 반대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식민지에서도 코뮤니스트는 식민지 약탈과 착취를 비난하면서도 새로운 제국주의 지배자에 대항하는 원주민 영주와 족장들의 모든 봉기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운동은 혁명적 민족 부르주아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농민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려는 원주민 봉건제나 아시아 독재자들의 시도로 여겨졌다. 반면에 중국과 같은 일부 대중적 식민지 반란은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된 민족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를 제공하거나 피억압 국의 계급투쟁에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았다. 우리는 맑스와 엥겔스가 이런저런 민족운동을 지지한 것이 옳았는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보다 코뮤니스트들이 민족운동이 진보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한 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피억압 민족의 '감정'이나 민족 자결권에 대한 영원한 '권리', 심지어 특정 국가에서 획득한 특정 조건에 근거해 판단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상승기에는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미래에 자본주의 무덤을 파게 될 노동계급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한 조건 성숙에 유리한 것이 진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쇠퇴기, 제국주의 시대에는 '민족독립'을 위한 전략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

 

레닌은 식민국가의 정치투쟁이 제국주의 열강을 뿌리까지 뒤흔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탈식민지화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탈식민지화는 경제 권력 구조에 거의 변화를 주지 않았다. 많은 경우, 구(舊)식민지는 미국이 구식민 강대국들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제국주의 사이 세력 다툼의 결과로 독립했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민족해방을 위한 진보적인 전쟁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반(反)식민지 투쟁 중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이어진 것은 하나도 없으며, 단지 새로운 반동 세력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제국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 그쳤을 뿐이다.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의 결과는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세력으로의 대치로 나타난다. 민족해방투쟁은 피억압 민족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가 아니라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한 투쟁은 어떤 경우에도 제국주의를 약화하지 않는데, 제국주의의 뿌리, 즉 자본주의 생산 관계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족해방투쟁이 제국주의 블록 하나를 약화하면, 그와 더불어 단지 다른 하나를 강화할 뿐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제국주의 강대국과 주변국, 약소국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주변국의 부르주아지는 때때로 제국주의 서열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반제국주의' 수사와 사회적 선동에 의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세계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지배하는 필수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이런 이유로 '민족해방운동'은 부르주아 분파의 이익을 대변하고, 노동계급에 대한 제국주의 사이 대결 구도의 일부로 작용한다. '민족해방' 또는 '민족자결권'에 대한 모든 이론과 구호는 계급 안에서 민족주의 균열을 조장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 통제 아래 두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 편을 들어 노동계급 운동이 발전한다거나 혁명적 국제주의의 부활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어떤 구실이나 명분으로든 전쟁에 참여해서 전쟁에 맞설 수는 없다. 반대로 국제주의 조직의 첫 번째 임무는 민족 부르주아지와 국제 제국주의의 수많은 촉수로부터 노동계급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와 전쟁을 거부하고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적 대안을 옹호해야 한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반(反)혁명적 정치와 '현상 유지'를 위한 것이다.

 

평화의 시대에는 과잉 착취당하고 전쟁의 시대에는 학살당하는 노동계급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노동계급이 무언가를 위해 일하고 때때로 희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계급의 적(敵)인 부르주아지의 이익이 아닌 노동계급의 이익이어야 한다. 노동계급이 제국주의 전쟁과 착취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민족주의를 비롯한 모든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공동의 이익을 위해 민족과 국경을 넘어 연대하여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해 투쟁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방어해야 할 국제주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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